‘활짝’ 열리는 유럽 원전시장…국비 사업서 금융 프로젝트로 진화
韓 원전, 기술력·사업관리에 자금조달 능력까지 세박자 모두 갖춰야
‘큰손 ’유럽 상업은행 투자 이끌려면 ‘K택소노미=EU택소노미’ 필수

영국 힝클리 포인트 C(Hinkley Point C) 원전 건설현장 전경.

정부의 원전 수출 10기 로드맵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다. 원전수출전략추진위원회 출범을 예고하며 올해 입찰 일정이 시작된 체코와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중점 수출국을 추가 발굴한다.

지난 7월 6일 유럽연합(EU) 의회가 원전에 대한 투자가 일정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친환경으로 인정하는 EU택소노미 최종안을 확정하자 이르면 다음 달 발표될 예정인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K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되는 것은 기정사실로 굳어졌다. 국내 실정에 맞게 조건을 완화하자는 현실론이 고개 들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본지 취재 결과 K택소노미는 EU택소노미와 동등한 조건을 설정해야 정부의 원전 수출 목표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 프로젝트로 변모 중인 원전사업…K택소노미, EU택소노미에 맞춰야 '큰손' 투자 가능

한국 원전이 수주 낭보를 울릴 해외 시장은 어디가 유력할까. 중국,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한 중동, 아프리카보다는 유럽이 유망한 시장으로 꼽힌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유럽 원전의 평균 수명은 약 38년으로 북미(36년)를 제치고 가장 오랜 기간 원전을 운영해왔다. 이 때문에 노후 원전에 대한 교체수요는 전 세계에서 제일 높다. 체코와 폴란드, 루마니아 등 동유럽 국가의 신규원전 건설 수요도 있다.

그 사이 원전 건설은 대형금융 프로젝트로 진화했다. 원전 수입국이 국비만으로 원전을 건설하던 시대는 지났고, 수십조 원에 이르는 전체 사업비 중 일부를 원전 수출국이 직접 마련하는 시대로 변했다. 이제 원전 수출국은 기술력과 사업관리 능력뿐 아니라 자금조달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

재정이 약한 원전 수입국일수록 이런 경향은 짙게 나타난다. 일례로 폴란드는 2043년까지 총 6~9GW 규모의 원전 6기를 순차 도입할 예정인데, 전체 사업비 중 최대 49%에 해당하는 약 19조원을 원전 수출국이 조달해올 것을 요구한다.

이 가운데 EU의회가 원전을 녹색(친환경)으로 분류하기로 하면서 금융은 원전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성격을 띠게 됐다. 원전 도입국은 EU택소노미가 부과한 조건을 만족해야 낮은 이자율에 녹색 채권을 발행하거나 유럽 상업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폴란드 사업과 같이 원전 수출국이 사업비 일부를 조달하는 경우 한수원은 유럽 상업은행이 참여하는 대주단을 구성해야 한다. 수출입은행이 지원하는 수출금융만으로는 19조원에 이르는 재원을 조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럽 상업은행으로부터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받으려면 EU택소노미와 K택소노미의 조건을 일치시키는 게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 전문가는 "한수원과 프랑스 EDF가 유럽 현지에서 녹색 채권을 발행하거나 유럽 상업은행이 포함된 대주단을 구성해 대출을 받아 각기 다른 원전 사업을 진행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유럽 투자자는 프랑스 EDF에 대해서는 EU택소노미를, 한수원에 대해서는 K택소노미를 근거로 투자하게 되는 셈인데 만약 K택소노미 조건이 EU택소노미보다 후퇴한 것이라면 그린워싱을 염려한 유럽 투자자는 한수원에 대한 투자를 꺼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K택소노미 조건이 EU택소노미보다 뒤처지면 유럽 상업은행은 녹색위장행위(그린워싱)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어 한국 원전 사업에 대한 투자 유인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대주단 구성조차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됐다. 또 다른 전문가는 "지난 2011년 UAE 바라카 원전 수주 당시를 떠올려보면 한전은 수출입은행과 유럽 상업은행으로 대주단을 꾸렸다"며 "유럽 원전도 수출입은행이 반드시 참여할 텐데 K택소노미 조건을 기초로 하는 수출입은행과 EU택소노미 조건을 기초로 한 유럽 상업은행 사이 자금조달 기준이 각기 다르면 대주단 구성 자체가 어려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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