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을 사랑한다는 말이 참 어색할 수 있겠지만, 나는 원자력을 참 사랑한다. 나의 원자력에 대한 사랑은 재수해서 겨우 들어간 첫 대학인 경북대학교 전자공학과의 4학년이 되던 해인 2009년도부터 시작된다. 모든 게 불안했지만 지치지 않는 열정과 다시 일어서는 용기로 가득했던 나의 20살, 나는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원대한 포부로 막연히 전기와 가장 가까워 보이는 전자공학을 선택하게 되었다. 첫 대학시절 "전자"를 공부하게 되었지만, 나의 관심은 점차 원자 껍질의 외곽을 헤매고 다니는 "전자"가 아닌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원자핵"에 가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자기력보다 핵력이 더 강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쨌든, 나는 강한 핵력에 끌려 전자과 4학년인 2009년 봄에 전공 변경을 결심하고, 이듬해에 두 번째 대학인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3학년으로 편입하게 된다. 시골 촌놈보다 더 촌뜨기 같던 나였지만 라마쉬의 핵공학개론을 폼나게 옆에 끼고 원자력이란 거대한 무대에 첫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운 좋게도 그 해 여름에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인턴으로 한 달 동안 근무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넓디넓은 원자력연구원의 중앙에서 나는 나의 원자력에 대한 사랑을 정말로 정확하게 표현한 휘호가 적힌 비석을 만나게 된다. "원자력은 국력" 이 얼마나 전율케 하며 가슴 뜨겁게 하는 말인가. 내가 배우고자 노력하는 원자력은 그 자체로 국력이라니. 그래서 더 도전하고 싶었다. 그것도 원자력의 원리인 질량-에너지등가법칙을 발견한 아인슈타인이 공부한 스위스 취리히공대에서 나도 원자력의 새 역사를 열고 싶다는 가슴 벅찬 꿈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바로 이듬해에 비행기를 세 번이나 갈아타는 고된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 때 나는 다짐하였다. "원자력을 공부하여 내 나라 대한민국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지도자가 되겠노라고." 매일 아침 6시에 도서관 문이 열리기 전에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밤 12시에 문 닫기 직전에 나오는 그런 일상을 반복하며 석사를 나름 우수한 성적과 연구실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박사에 진학하여 스위스와 독일 두 국가의 국립연구소에서 원자력의 안전에 대해서 더욱 깊이 있게 공부하고 연구할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참 독하게 공부하고 또 적극적으로 뭐든 달려들었다. 그래서 연구소에서 내게 붙여준 별명이 Super Korean이었다. 

원자력을 배우는 내내 나는 정말로 자랑스러웠다. 유럽에서 내가 배우는 프랑스의 주력 노형인 EPR이 핀란드에서 제대로 지어지지 못할 때, 대한민국의 APR1400은 바라카 사막 한 가운데서 기한과 예산에 맞추어 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위스와 독일에서의 유학 시절 나에 대한 평가는 내 개인으로만 끝나지 않았고, 나의 나라 대한민국의 원자력 기술과 연관 지어 설명되었다. 나는 적어도 내가 있었던 자리에서 만큼은 대한민국 원자력을 대표하는 국가 대표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더욱 열심히 하였다. 그리고 우월적인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더욱 끈질기게 연구와 토론에 임하였다. '지금 나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고, 머지않은 나중에 곧 대한민국을 밝히는 한 줄기 빛이 될 것'이란 그런 벅차오르는 소망이 있었다. 그 소망은 유학 시절의 배고픔과 외로움이 유일하게 정당화된 나만의 동기부여였고, 나의 생의 가치의 큰 한 축인 사명감의 초석이었다. 2016년 박사 논문 초안을 제출하고 병역 특례 복무를 위해 한국에 돌아왔고, 돌아온 내 나라 대한민국은 정치적으로 많이 어지러웠었다. 귀국 다음 해인 2017년은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와 탈원전 선언으로 개인적으로 참 혼란스러웠다.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면 엄청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그런 환상이 내면의 저변에 항상 깔려 있었는데, 그런 희망마저 전복되는 위기감이 들었다. 원자력과 사랑에 빠지고 타국에서 배고픔과 외로움을 당연히 때로는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Super Korean으로 대한민국 원자력 국가대표가 되고자 노력했었는데, 나의 이 순전한 사랑을 내 나라 대한민국이 등지는 것 같은 배신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원자력의 기술이 하루아침에 쌓아진 것이 아닌 것처럼 대한민국의 원자력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제2의, 제3의, 그리고 또 다음의 바라카를 실현하여 대한민국 원자력 영토를 공격적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과 어느 누군가는 민간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여 원자력 산업의 경쟁력의 저변을 더 넓히고 한 단계 끌어 올려야 한다는 새로운 역할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원전 수출 전문가가 되고, 동시에 민간과 소통하는 신사업 전문가가 되어 내 나라 대한민국 원자력 산업의 새로운 전기를 여는 그 흐름의 본류에 서고자 다짐하게 되었다. 이제 대한민국 원자력 산업은 다시 크게 도약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얻게 되었고, 글로벌 기후위기와 에너지 안보 위기로 원자력의 중요성이 나날이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인 윤동주가 남의 나라의 육첩방에서 당당하게 다짐하였듯이 나의 유학 시절에 더욱 소신 있게 다짐하였던 것처럼 차세대 원자력 무대에서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내가 되어 대한민국 원자력 산업의 재건과 부흥과 새로운 도약에 앞장 설 수 있길 소망한다.

프로필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기계공학(원자력) 박사 졸업 ▲법무법인(유) 광장 전문위원 ▲(전) 한국원자력학회 총무이사, 특임이사 ▲(전) 스위스 Paul Scherrer Institute 연구원, ▲(전)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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